퀵메뉴
Home Home Home Home Home
Home
 
Home
 
Home

home > 가곡 > 가곡이란

 
소남 이주환
 
소남 이주환

영원한 스승, 소남 이주환

이주환은 서울에서 태어나 이왕직아악부 3기생으로 입소하여 국악에 입문했다.
김영제(金甯濟)·함화진(咸和鎭)·최순영(崔淳永) 문하에서 아악을 배웠으며,
원래 전공은 피리였으나 하규일에게 가곡, 가사, 시조를 전수받아 일가를 이루어 20세기 중반 정가 전승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31년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를 졸업하고 이왕직 아악수(雅樂手)·아악수장·아악사(雅樂師)를 지냈고, 광복 후 구왕궁아악부
아악사장(雅樂師長)을 역임하였다.
1951년 국립국악원 개원과 더불어 초대 원장에 임명되었으며,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 양성소장을 겸임하는 등 정가 전승 외에
국악 행정 및 교육 분야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1969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로 지정, 1971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 예능보유자로
추가 지정되었으며, 서울시문화(1958) · 예술원상(1971)을 각각 수상하였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강사·한국국악학회 이사·가곡보존회 회장·한국정악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가곡보 歌曲譜》·《속 가곡보》·《가사보 歌詞譜》등의 정가 관련 저서와 가곡 음반을 남겼다.

 
청운 홍원기
 
소남 이주환

타고난 미성의 소유자, 청운 홍원기

청운 홍원기는 1922년 서울 출생으로 이왕직아악부 5기생으로 입소하였다.
그의 전공은 가야금이었으나 아악부의 이병성,
이주환과 민간에서 활동한 최상욱에게 가곡, 가사, 시조 등의 정가를 배웠으며 이중 정가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다른 가객이 잘 모르는 최상욱의 시조제 ‘우조시조’와 ‘우조지름시조’ 등을 즐겨 부르는 등 아악부의 교육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살찌우는데 노력하였다.

1960년부터 민속악 중심의 국악예술학교(현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에 유일한 정악교사로 국악개론과 시조 창 등을 맡아, 15년간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1961년부터는 9년동안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강사로 정악 가야금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가 되었으며, 가곡의 전승과 보급을 위하여 ‘한국전통가곡진흥원’을 창립하여
많은 제자들을 키워냈다.

남창가곡의 명인이었으나 여창가곡에만 존재하는 속청을 잘 표현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 제자들에게 이를 전수시켰으며,
12가사 중 최상욱제의 〈백구사>, 〈죽지사>, <춘면곡>, <황계사>, <상사별곡〉 6가사와 우조지름시조에 출중하였다.

 
이난향
 
이난향

팔방미인 이난향

이난향은 1900년 평양 태생으로 15살에 서울로 와 조선 권번에 입적하였다.
다른 곳에서는 가곡을 전혀 배운바 없고, 처음으로 조선 권번에서 하규일 선생님으로부터 정악가무일체를 배웠으며 하규일 선생의
수제자로서 가장 뛰어나다는 인정을 받았다.

이난향은 모든 노래를 두루 잘 불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잔노래와 가사가 그의 장기(長技)었다.
그가 부르는 가사는 전달이 분명하고, 명쾌한 시김새가 정평이었다.


인기가 절정에 이르렀던 서른 한 살 때에 서울의 한 신문사 기자로 일하던 남상욱 씨와 결혼하였으나, 가사 일을 돌보면서도 계속
노래를 불렀다.
그는 결혼 후에도 틈날 때마다 하규일 선생님께 노래를 배우며 연달아 노래 네 바탕을 배웠을 만큼 가곡 수련에 열성적이었다.
35살에는 가곡을 레코드에 취입하여 후대에서도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부르는 노래의 특징은 음정과 선율이 정확하고 발음이 똑똑하여 노래가 앳되게 들리면서도 애틋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하규일 선생님이나 일반에서의 세평(世評)도 그의 노래가 특히 잔노래(平弄 : 북두칠성의 이하부분)에 뛰어나다는 총평이 나있었다.
또한 가곡뿐만 아니라 가사도 잘 불렀다고 알려져 있다.

 
 
 
Home